이 작품을 아시는가?
벨라스케스의 <시녀들>이란 작품이다
수없이 많은 후배 화가들이 오마주를 한 작품이자, 수없이 많은 철학가들이 분석을 하려 한 작품이며, 수없이 많은 미술계 인사들에게 최고의 명작이라 칭송을 받는 작품.
도대체 이토록 많은 사람들이 1600년대에 그려진 이 <시녀들>에 매혹된 이유는 무엇일까?
많은 포인트들이 있겠지만 그 중 대표적인 것은, 이 작품이 너무나도 '미스터리'하다는 것에 있다
그림을 한번 분석해보자.
먼저 그림상엔 빛이 들어오는 곳이 단 두 군데뿐 이지만(오른쪽 창문과 가운데의 문) 빛의 밸런스가 굉장히 적절하게 이루어져 있는데, 그 핵심적인 역할을 하는 것이 바로 왼쪽의 '캔버스'이다
거대한 캔버스가 그림의 중심을 무너트리지 않도록 만들고있는 것이다
그런데 캔버스가 뒤로 돌려졌기에 우리는 그 캔버스에 무엇이 그려져있는지 알 수가 없다.
과연 벨라스케스는 무엇을 그리고 있는 것일까?
자, 여기서 가운데의 여자아이를 살펴보자.
주위의 시녀복장을 하고있는 소녀들에게 보호를 받고 있는 모습, 이 아이는 공주이다.
그렇다면 벨라스케스는 공주를 그리던 중이었을까?
당시 벨라스케스는 궁정화가였기 때문에 충분히 말이 된다
그렇다면 다시 한번 살펴보자.
가운데의 공주는 지금 모델로서 서있는 것이고, 벨라스케스는 지금 공주의 초상화를 그리고있다.
여기서 이러한 분석을 뒤엎는 존재가 나타난다.
아마 많은 사람들이 주목하지 않았을, 그림 뒤쪽의 존재.
자, 바로 이들이다.
이들은 국왕 부부의 모습을 하고 있으며, 그림의 묘사를 보았을 때 저 액자는 거울일 확률이 크다.
아까 그 모습을 염두에 두고 이들의 위치를 살펴보자.
거울임을 생각해보았을 때, 이들은 지금 어느 곳에 있는 것일까?
먼저 지금 벨라스케스가 그리고 있는 것이 공주의 초상화라면, 국왕 부부는 지금 우리 감상자의 위치에 비슷하게 서있으며 공주를 바라보는 중일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된다면 벨라스케스는 공주를 국왕 부부보다 더 중심이 되게 만드는 것이다.
감히 궁정화가가, 국왕 부부에게 그런 불경한 짓을?
그렇다면 이런 해석은 어떨까? 지금 벨라스케스가 그리는 것은 국왕 부부인 것이다! 그리고 거울은 그 그림을 비추고 있는 것이다!
이것도 말이 된다. 이렇게 된다면 공주는 자신의 부모님을 그리는 벨라스케스를 구경하러 온 것일테니까.
하지만 이 두가지의 분석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이 그림을 바라보며 이상한 감정을 가지게 된다.
그 이유는 바로 벨라스케스의 시선때문이다.
궁정화가인 벨라스케스가 지금 그릴 것은 국왕부부 또는 공주뿐일테지만, 지금 그는 공주를 바라보고 있는 것도 아니며 어딘가 존재하고 있을 국왕부부를 바라보고 있는 것 같지도 않다.
지금 그는 "우리를" 바라보고 있다.
마치 그 캔버스에 우리가 그려져있을 것처럼.
<시녀들>을 바라보면 바라볼 수록, 우리는 점점 더 이 작품을 알 수 없게 되어간다.
묘한 분위기와 색감, 그림 속 인물들의 겹쳐지고 엇갈리는 시선들, 그리고 절대 우리가 알 수 없도록 단단히 뒤돌아있는 캔버스...
(벨라스케스: 궁금하지?? 메롱이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의 비밀을 풀어줄 열쇠를 지니고 있는 것은 바로 이 그림을 그린 화가, 벨라스케스 본인이다.
1600년대에, 궁정에 소속해있던 화가인데도 불구하고 이렇게 엄청난 주체성이라니, 놀랍지 않은가?
바라볼 수록 미궁에 빠져드는 <시녀들>은 이러한 매력덕분에,
그리고 이 모든 것의 비밀을 풀어줄 열쇠를 지니고 있는 것은 바로 이 그림을 그린 화가, 벨라스케스 본인이다.
1600년대에, 궁정에 소속해있던 화가인데도 불구하고 이렇게 엄청난 주체성이라니, 놀랍지 않은가?
바라볼 수록 미궁에 빠져드는 <시녀들>은 이러한 매력덕분에,
피카소,
고야,
달리,
해밀튼,
위트킨,
등등 굉장히 많은 화가들의 손에 의해 재탄생된 것으로 또한 유명하다.
(박민규 소설의 표지에도 나왔었답니다)
400년이 넘게 흐른 지금에도 여전히 많은 사랑을 받는 작품.
벨라스케스의 <시녀들>은 명작이라는 칭호가 왜 존재하는 지를 느끼게 해준다.
그의 작품은 400년이 흐른 후에도, 그리고 앞으로도 영원히 죽지 않고 살아갈 것이기 때문이다.
400년이 넘게 흐른 지금에도 여전히 많은 사랑을 받는 작품.
벨라스케스의 <시녀들>은 명작이라는 칭호가 왜 존재하는 지를 느끼게 해준다.
그의 작품은 400년이 흐른 후에도, 그리고 앞으로도 영원히 죽지 않고 살아갈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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